서울에서 충주까지, 통신사 길 따라 옛길 걷기
지난 3월 9일 시작된 통신사 옛길 걷기 다섯 번째 날이다. 출발지는 음성군 생극면 행정복지센터고, 도착지는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이다. 걸어야 할 거리는 38㎞로 만만치 않다.
경복궁에서 출발할 때 인원이 250명이었는데, 생극을 출발하기 위해 모인 인원은 30명이다. 28명이 서울에서 도쿄까지 완주하는 사람이고, 필자가 길 안내자로 나섰다. 그리고 차를 운행하며 걷기를 지원하는 사람이 1명 따랐다. 차량지원팀은 걷기에 필요한 물건을 싣고, 필요에 따라 중간중간 걷기팀과 만난다. 또 비상시에 대원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조선통신사 옛길 걷기 5일차 행사에 함께 했다. 걷기 대원 30명은 오전 7시 45분부터 10분 정도 체조를 하고 7시 55분 생극면을 출발한다. 생극면(笙極面)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처음 만들어진 이름이다. 생동면(笙洞面)과 무극면(無極面)을 통합하면서 생동의 생과 무극의 극을 더해 만들어졌다.
길은 과거 3번 국도였다 지금은 마을길로 변한 오신로를 따라간다. 오신로는 오생리와 신양리를 연결하는 도로라는 뜻이다. 오생리 끝에 오생삼거리가 있고, 여기서 대금로를 따라 좌측으로 올라간다. 이 길은 무너미(水越) 고개로 이어진다. 이 고개가 음성군과 충주시를 경계 짓는다.
고개를 넘으면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가 되고 신덕로를 따라 모남리에 이르게 된다. 모남리에는 옛날 과객들이 쉬어가는 모도원(毛陶院)이 있었다. 모도원을 지나면 서충주 인터체인지가 있고, 이내 길은 동락(同樂)에 이른다. 동락은 6․25사변 최초 전승지로 유명하다. 그것은 동락초등학교에 인민군이 진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동락초등학교 김재옥 교사가 국군에게 제보해 가능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이곳 동락초등학교에는 김재옥교사기념관과 6․25참전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동락초등학교 아래에 숭선(崇善)마을이 있었다. 죽산이나 무극에서 출발한 통신사 일행이 숭선촌에서 묵었다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일반적으로 통신사 일행은 네 번째 날 죽산(竹山)에서 출발해 용안역(用安驛)까지 간다. 그런데 날씨가 나쁠 경우 숭선에서 자기도 했다. 이 숭선마을이 1960년대 신덕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되었다. 그 때문에 남쪽으로 신덕로라는 길이 새로 나게 되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시대 용안역은 충주에 이르기 전 말을 바꿔 타거나 하루 묵어가는 중요한 역이다. 충주 서쪽 45리에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면, 용안역에는 남자 노비 103명, 여자 노비 81명이 있다. 이들은 행정과 교통통신 관련 일을 했다. 그리고 대마(大馬) 2필, 기마(騎馬) 7필. 복마(卜馬) 5필이 있었다. 여기서 대마는 사람이 타는 느린 말이고, 기마는 기발이 타는 빠른 말이다. 복마는 짐을 운반하는 말이다. 통신사 삼사는 필요에 따라 이들 말을 타고 갔다.
5일간 145㎞
과거 용안역이던 지명이 현재는 용원리(龍院里)으로 바뀌었다. 용안역 자리는 현재 외용1리 마을회관이 되었다. 마을회관 앞에는 창고 건물들이 보이는데, 이것이 과거 마방(馬房), 대장간, 솜틀집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덕고개로 맞은편 용원1길을 따라서는 국밥집, 양조장 등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점방은 용안역의 의식(衣食)은 물론이고, 생활용품, 마구와 농기구 등을 공급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통신사 걷기팀 일행도 용안역 앞 신니중앙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식사 후 길은 요도천(堯渡川)을 따라 이어진다. 고려말 이성계가 실권을 장악한 후 충주로 낙향한 배극렴을 불러들이기 위해 건넌 하천이라 해서 요도천이 되었다. 배극렴이 살던 곳이 어래산(御來山)인데, 그것은 임금이 찾아온 산이기 때문이다. 어래산 아래는 삼방리(三訪里)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성계가 이곳을 세 번 방문했다고 한다. 배극렴은 결국 이성계를 따라 개경으로 갔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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